지난 2000년 창문 하나 없는 경기도 분당의 한 오피스텔에서 직원 3명과 사업을 시작할 때 그의 소원은 햇빛을 보며 일하는 것이었다. 투자를 받으러 다니면 다들 “누가 휴대전화로 TV를 보겠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성전자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를 대신해 아내가 영어학습지 교사 일로 가정을 꾸렸다.
휴대전화로 TV를 볼 수 있는 ‘RF 튜너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2006년 회사를 1억6000만 달러(약 1890억원)에 매각해 엑시트(투자금 회수) ‘대박 신화’를 쓴 고범규(47) 하이딥 대표의 이야기다. 9년 뒤 그는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용 포스터치 기술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성공 신화를 썼다.
그가 개발한 ‘아울루지’는 화면을 누르는 강도에 따라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포스터치 기술이다. 같은 위치라도 누르는 강도에 따라 다른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아울루지의 상용화를 앞둔 올해 초 애플이 아이폰6S에 포스터치를 탑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애플워치에선 2단계로 압력을 구분했지만 이번에는 여러 단계를 감지하는 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고 대표는 “무조건 애플보다 먼저 기술을 선보이는 게 중요했다”며 “아울루지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먼저 공개할 수 있는 제조사를 찾기 위해 국내외를 백방으로 찾아다녔다”고 설명했다.
기술 채택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중국 화웨이와 계약이 이뤄졌다. 그러고 9월 2일 화웨이는 독일 가전박람회(IFA)에서 세계 최초로 포스터치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 ‘메이트S’를 공개했다. 당시 주요 외신들은 ‘화웨이가 애플을 따돌렸다(Beat)’며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고 대표는 “애플은 일주일 뒤에 아이폰6S를 공개했는데 화웨이가 ‘포스터치’라는 말을 쓴 것을 의식한 듯 ‘3D터치’라는 말을 들고 나왔다”며 “임직원 60명의 하이딥이 11만 명의 애플을 앞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불필요한 터치를 줄일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고 했다. 그래서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2차원에 압력에 따라 달라지는 ‘깊이’를 더해 3차원을 만들었다. 사진을 확대하려면 기존에는 한 손에 스마트폰을 잡고 다른 손의 엄지와 검지로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포스터치는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받치고 엄지만 눌러 크기를 원하는 대로 확대·축소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내년 나오는 스마트폰 4대 중 하나는 포스터치 기술을 채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터치 중 아울루지를 채택하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늘면서 하이딥의 매출은 올해 400만 달러에서 내년 5000만 달러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의 판잣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화를 살 돈이 없어 고무신을 신고 다녔고 공동 화장실서 볼일을 봤다. 고등학교·대학교도 등록금을 많이 주는 학교를 택했다. 1997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며 삶은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3년이 지나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가난에 대해 원망한 적은 없었지만 돈과 타협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내가 꿈꾸던 모험의 길을 떠나보자는 생각에 과감히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이나 성공한 비결에 대해 “남 탓을 하지 않고 내 능력을 믿고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창업 환경이 조성됐는데 제도 때문에 창업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실패 안 하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실패를 일찍 경험하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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