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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든 콧수염 신사, 시대를 풍미한 익살꾼 '찰리 채플린'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16일 그의 최초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1940)가 재개봉했다. 국내에서는 2002년과 1988년에 이어 세 번째 개봉이다.

찰리 채플린은 앞서 1936년작 <모던 타임즈>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무성영화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작품성을 인정받은 그는 4년뒤 자신의 작품 중 최초의 유성영화인 <위대한 독재자>를 제작, 개봉하게 된다.

찰리 채플린의 1인 2역과 뛰어난 연출력

 

찰리 채플린은 <위대한 독재자>에서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아 자신의 능력을 한껏 펼친다. 장면마다 뛰어난 상황 연출과 재치 있는 대사로 관객을 웃게 만든다. 또한 그는 각본과 제작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플린은 소박한 유태인 이발사 '찰리'와 세계정복의 야망을 이루고자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힌켈' 1인 2역을 모두 맡아 연기하면서 뛰어난 연기력도 선보인다.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유럽, 가상국가 '토매니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토매니아는 전쟁에 패배하여 힌켈 정권의 독재 체제 아래에 놓인다. 토매니아 국민으로서 참전했던 이발사 찰리는 비행사 슐츠(레지날드 가디너) 장교의 목숨을 살려내지만 사고로 전쟁에서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

병원에서 나온 찰리는 자신의 이발소를 다시 찾아가지만 상황은 예전과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돌격대 병사들로부터 착취와 폭력을 겪고, '게토' 지역에서의 삶은 극도로 핍박해졌다. 이런 와중에 찰리는 이웃집 여인 한나(파올레트 고다드)를 만나 서로 이끌려 사랑을 키워나간다.

전쟁이 평화롭던 마을과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참상을 묘사하면서도, 찰리 채플린 특유의 재치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돌격대원의 주먹질을 피하면서 페인트통을 엎지르는 찰리의 모습이나, 그를 도우려던 한나가 후라이팬으로 돌격대원과 찰리를 번갈아 후려치는 장면은 폭소를 유발한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에 맞추어 찰리가 손님의 턱을 면도하는 장면도, 음악과 동작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시선을 잡아끈다.

한편, 독재자 힌켈은 토매니아를 함락시킨 뒤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더욱 키워나간다. 그는 인접한 자유국가 오스트렐리히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는데, '박테리아'국의 독재자 나폴리니가 호시탐탐 먼저 침략할 기세를 보여서 망설인다. 과연 평화를 사랑하는 이발사 찰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힌켈의 시대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75년 전 영화가 보여주는 권력 풍자, 신랄하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우스꽝스러운 상황 설정이 <위대한 독재자>가 뿜어내는 매력 중 하나지만, 핵심은 개그의 외피 안에 자리잡은 풍자에 있다. 먼저 독재자 힌켈의 묘사부터가 압권이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는 힌켈은 실제로는 뜻도 없는 단어를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 마구 뱉어내고, 심지어 그러다 콜록거리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쌍십자당의 수십만 군중은 연신 박수를 치느라 바쁘다. 조그마한 콧수염에 쌍십자당의 문양까지, 과거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당을 고스란히 패러디하고 있다.

강한 억양의 독일어를 구사하는 힌켈은 겉으로는 시종일관 '권위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이와 다른 내면을 갖고 있다. 괴벨스를 연상시키는 장군 가뷔치(헨리 다니엘)에게 강압적으로 명령을 내리면서도, 주변국 침략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앞두고는 그에게 결정을 슬쩍 떠넘긴다. 경쟁국가 지도자를 보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타인에게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냄새를 풍기고 자유는 추악한 것이며, 연설의 자유는 인정될 수 없다."

지구본 모양의 풍선을 공중에 띄우며 춤을 추는 힌켈은 세계정복을 꿈꾼다. 그의 행적을 모두 찬양하는 영화 속 언론과 토매니아 군 수뇌부는 나치 독일을 한껏 희화화한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모두 비하하면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설파하는 힌켈은 정작 전쟁 발발을 앞두고는 두려움에 떤다. <위대한 독재자>의 모든 장면은 결국, 인간성을 상실한 권력을 조롱하는 일침이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렐리히국은 오스트리아, 박테리아국은 이탈리아, 이탈리아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독재자 나폴리니는 무솔리니로 대입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위대한 독재자>의 줄거리는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두고 당시 국제정세를 묘사한 것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등장한 1940년대는 히틀러가 지휘하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버젓이 자행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75년 전에 찰리 채플린은 대담하게 권력을 향한 날선 비판과 신랄한 풍자를 스크린으로 옮긴 셈이다.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연설이 묵직한 이유

찰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의 신념이 영화에도 담긴 것일까? <위대한 독재자> 속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삶은 전쟁을 겪느라 처참하지만,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당시의 묘사는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에 가깝다.

독재자와 이발사가 비슷한 외모의 인물이라는 설정은, 수용소에서 탈출한 찰리가 연설대에 오르는 대신 혼동한 병사가 힌켈을 연행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영화는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각각의 상황들을 묘한 지점에서 연결한다. 그러면서 점차 명장면, 이발사 찰리의 연설을 향해 나간다.

"미안합니다. 저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남을 지배하고 싶지 않으며, 가능하면 보통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마지막 연설로 말이다. 잔혹한 독재와 전쟁터를 지켜본 이발사의 외침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우리 인생은 충분히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이 세상을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고, 우리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을 이뤘지만 우리 자신은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든 기계문명은 우리에게 오히려 결핍을 가져다 주었고,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가슴으론 느끼는 게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기계보다 인류애가 더욱 절실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중략) 모두에게 일할 기회를,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노인들에게는 안정을 보장하는 훌륭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갑시다. 극악무도한 자들은 이것들을 약속하며 권력을 키웠지만 그들의 약속은 실행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함께 싸웁시다. 세계를 자유롭게 하고, 국경을 없애기 위해,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버리도록 투쟁합시다. 이성이 살아있는 세상을 위해 싸웁시다. 과학의 발전이 전 인류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세계를 만듭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모두 하나로 단결합시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을 다른 민족에 대한 멸시와 탄압에 동참하는 것으로 버티던 군중을 향해, 찰리는 굴종하지 말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라고 외친다. 노예제도가 아닌 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그러기 위해서 증오를 멈추고 화합하자고 말한다.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정치인의 공약은 선거철의 흔한 홍보문구로 전락하고, 혐오의 언어가 사회 각계로 퍼져나가며, 민주주의와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연설이 묵직하게 와닿는 이유는 영화 속 세계와 비슷한 현실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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